김훈중위사건의 실체
군대의 의문사 사건은 일반 미제 사건보다 훨씬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큽니다.
1998년에 발생했던 김훈중위 사건 역시 대표적인 의문사인데요.
2000년 개봉한 영화 공동 경비구역JSA는 크게 흥행을 하였지만 영화의 소재가 된 남북 병사들간의 불법적인 접촉은 실제 일어났던 사건이고, 김훈 중위 사건 또한 여기에 기인하였음에도 그냥 그렇게 영화와 소설의 일회성 소재로만 소비되고 말았던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마침 최근 알쓸범잡에서 JSA의문사 김훈중위사건을 다루었기에 해당 편의 방송 장면 소개해 드립니다.
김훈 중위 사건
김훈 중위 사건은 1998년 2월 24일 판문점 공동경비 구역내의 벙커에서 김훈 중위가 총상으로 사망한 사건입니다.
그런데 제대로 수사도 하기 전인 사건 2시간만에 국방부는 이 사건을 자살 사건으로 결론을 내리고 발표를 해 버립니다.
김훈 중위 사건의 의혹들
국방부의 말도 안되는 사건 은폐 및 조기 종결 시도가 있었지만 당연히 여러 의혹들이 남게 됩니다.
김훈 중위가 자살을 했다면 권총을 발사한 손에 총이 발사될 때 터지는 뇌관화약이 묻어 있어야 하는데 그 흔적이 전혀 없었고, 관자놀이에 대고 총을 쏘면 뇌에 검은 가스 자국이 남아야 하지만 이런 자국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스스로 총을 머리에 대고 자살한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떨어진 거리에서 총을 쐈다는 것이 되는데요, 이런 타살 가능성을 더욱 짙게 의심할 수 밖에 없는 정황은 더 있었습니다.
우선 발견된 권총은 김훈 중위의 총이 아니었고, 김훈 중위의 지문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사망장소의 크레모아 스위치 박스가 파손된 흔적들로 미루어 몸싸움이 벌어진 것 같은 정황도 있었습니다.
또, 최초의 현장 사진에는 권총과 철모가 같이 있었는데 나중에 이 철모는 사라져 버렸습니다.
증거 조작의 흔적으로 의심해 볼 수 있는 사례들이 계속 발견되었던 것입니다.
훼손된 사건 현장
당시 김훈 중위 사건의 현장은 미군 수사대가 지휘 통제를 하였고, 국군 수사대는 한 시간 뒤에야 잠깐 현장을 둘러보았을 뿐이었습니다.
현장의 혈흔은 하루만에 모두 지워졌고, 다음 날엔 페인트칠까지 다시 해버려서 김훈 중위 사건의 현장은 완전히 훼손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미CID 수사관은 이 사건을 자살 사건으로 서둘러 종료하였습니다.
국방부가 발표한 김훈 중위 자살의 동기는 당시 유행했던 '노르웨이의 숲'을 자살을 미화한 소설이라고 밝히며, 이를 읽은 김훈 중위가 자살한 것이다고 코미디 같은 발표를 했습니다.
밝혀지는 진실
위에서의 내용은 마치 대한민국의 장교가 공동경비구역내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했는데 우리나라는 아무런 힘도 없이 미군 수사대가 와서 좌지우지 하였다고 패널들이 지껄이는 모습입니다만 실제로 김훈 중위 사건의 진실은 지금부터입니다.
당시 공동경비구역 영화에서도 나왔던 것처럼 실제로 JSA내에서 남북 병사들이 왕래한 사건이 있었고요, 이건 아주 심각한 간첩행위이자 이적행위인데 당시 김대중 정부는 이를 문제시하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김훈 중위 사건 이전에 발행된 소설이야 작가의 상상력이라고 치부하더라도 최소한 실제 사건이 벌어진 1998년에는 남북 병사들간의 불법적인 왕래가 있었음이 분명합니다.
유가족의 의심
김훈 중위의 유가족들은 당연히 이런 정권을 의심할 수 밖에 없었겠죠.
그리고 결과적으로 그 의심은 맞아 떨어진 셈이고요.
정부에서는 의심을 잠재우려 법의학자들을 내세워 공개토론을 하였지만 이미 정부측 인사들로 채워진 국내 법의학자 7명은 무조건 자살이라고 우겨댔습니다.
그러나 재미학자 노여수 박사는 13가지를 근거로 대며 타살을 주장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런 노여수 박사의 타살 주장에도 불구하고 최종 발표는 자살로 확정이 됩니다.
당연히 유가족들은 받아 들일 수 없는 결과였죠.
김훈 중위 사건 초동 수사의 미흡
김훈 중위 사건은 결국 2006년 대법원 판결에서 초동수사 잘못으로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수 없게 만들었다며 수사의 실패를 인정합니다.
그리고 2009년 11월 2일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김훈 중위 사건을 진상규명불능으로 결정해 버립니다.
그리고 2012년 국민권익위원회는 김훈중위 사건을 자살이 아닌 순직여부 재심의를 권고하였고, 2017년 순직 결정이 납니다.
이에 따라 김훈 중위의 유해는 19년 만에 현충원으로 옮겨졌고, 국가유공자 증서를 받게 됩니다.
그러나 김훈 중위의 아버지 김척 예비역 중장은 정부가 아직 진심어린 사과를 하지 않았음을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김훈 중위 사건을 계기로 의문사에 대한 관심이 더욱 높아졌고, 의혹 해소를 위해 사망사건 발생시 현장을 그대로 보존하여 유족과 수사기관이 함께 현장을 볼 수 있도록 개선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의문사라는 것이 없어야 겠지요.
나라를 위해 자식을 군대에 보낸 부모님에게 더 이상 이런 청천벽력같은 소식이 없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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